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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구체적 수치는 없습니다.확인 후 답을 드리겠습니다.”
미국 펜타곤에서 난해한 사안을 접할 때 나오는 단골 답변이다.대변인의 진가는 브리핑 직후 드러난다.공보실은 즉각 합참과 작전부를 훑어 사실관계를 맞춘다.오폭이든 바닥난 탄약이든,뼈아픈 수치까지 채워 기자실에 서면을 돌린다.공식 녹취록에‘보충 답변’주석까지 달아 책임을 다한다.펜타곤이 지켜온 공보의 원칙이다.
똑같은 문장인데 왜 우리 국방부를 두고는 말이 많을까.쌓인 게 많다.전쟁기념관에 중공군 군복이 등장해도,훈련 축소 논란이 일어도,오션 토토순직 사고가 터져도‘확인해 보겠다‘앞서 설명했다’며 복사해 붙이듯 했다.자료를 보강했다는 후일담은 듣기 힘들다.특히‘답변이 제한된다’는 윗선이 입을 닫았으니 어쩌란 말이냐로 들릴 법하다.
급기야 군사분계선 일대에서 지뢰가 폭발했다.통상 지휘소에 있을 대대장이 왜 현장에 갔는가?몇 명이 어디를 다쳤나?해명이 불투명하다.세간엔 흉흉한 소문마저 돌았다.평소에도 기싸움에 밀리지 않던,한 기자의 추론이 그 틈을 찔렀다.
“대응사격을 했다면,군이 북한의 지뢰 매설 작업을 다 지켜보고 있었다는 뜻입니까?”
또 답이 없다.공보(公報)가 공허(空虛)하니 “밖에서 사람들이 뭐라는지 좀 들어보세요!” 기자석에서 외침이 터져 나왔다.비언어적인 부분도 아쉽다.아들 둔 대한민국 부모라면 자기 일처럼 가슴을 졸였을 사건이다.눈물 흘릴 필요는 없지만,굳게 다문 턱관절에서 일말의 공감이라도 읽은 사람,있을까.
정부 부처에 대변인 자리가 나면 기자나 앵커들 이름이 자주 오르내린다.언론 생리를 아니 공보도 능할 것이라는 기대감이다.내 경우엔 상상‘만’해도 부담스럽다.마이크를 오래 잡을수록 말의 무서움을 절감하기 때문이다.아무리 조심해도 나 역시 말로 여전히 실수하고,상처받는다.하물며 세금으로 운영되는 부처를 대변한다는 것은 얼마나 두려운가.베테랑 언론인마저 대변인이 되면 방송 때만큼 자연스럽지 않다.관계자에게 물으니 준비된 자료 외에 입 떼기 조심스러운 분위기라 들었다.
미국에는‘머더 보드(Murder Board)’라는 훈련 시스템이 있다.정책 참모와 전직 언론인들이 악랄한 질문을 퍼붓고,표정과 시선을 초 단위로 뜯어고친다.보안이 걸려 있다면 어떨까.“답변이 제한된다”며 끊기보다 “보안상 밝힐 수 없지만,확인할 수 있는 사실은…”이라며 우회로를 연다.대변인이 단순 전달자가 아니라 전후 맥락을 쥐고 있기에 재량권도 있다.지휘관이 다칠 만큼 중대 사안이라면,우리도 대변인보다는 군 수뇌부가 직접 나서야 했다는 생각도 든다.
“확인 후 답을 드리겠습니다.” 이 말이 힘을 얻으려면 두 가지가 필요하다.국민과 함께 나눈다는 정서적 공감,답변 못한 공백은 끝내 팩트로 메우는 치열함.그것이 대변인,나아가 공복(公僕)이 지녀야 할 최소한의 자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