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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코틀랜드축구협회는 안전을 고려해 해당 경기를 무관중으로 개최했다.[4] 부당한 禁忌와 성역화
‘시진핑’상호에 불만을 품고 테러
실체를 숨기고 비판도 피하려는
초법적 존재라 부르면 안 되는가?
도주한 중국인들 법으로 처벌해야
생각이 잘못되면 행동도 잘못될 수밖에 없다.문제는 우리가‘개념 상실의 시대’를 살아가고 있다는 것.어렵게만 느껴지는 철학과 인문학의 개념들을 이해하면서 우리의 현실을 진단해 본다.
추석 연휴인 9월 24일 새벽,젊은 중국인 남성 4명이 경기도 성남시의 한 중식당 앞에 모였다.래커와 페인트를 챙겨온 그들의 목적은‘시진핑’이라는 식당 간판에 먹칠을 하고 가게를 파손하는 것이었다.무비자로 입국하고 만행을 저지른 후 인천공항으로 출국한 그들을 체포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대체 왜 이런 짓을 저지른 걸까?직접 물어볼 수는 없다.감히 시진핑이라는 이름을 중식당 상호로 쓰다니 무엄하다,이런 생각으로 남의 나라 식당 이름을 왈가왈부하며 급기야 테러까지 저지르지 않았나 추측할 따름이다.그 동기가 무엇이건 외국인이 고의적으로 한국에서 우리 국민에게 피해를 입히고 달아난 사건인 만큼 반드시 체포하여 진상을 밝히고 죄를 물어야 한다.
범인이 잡히기를 기다리는 동안 철학적인 고민을 해보자.그 중국인들은 왜 그토록 분노했던 것일까?우리는 그들과 같은 동북아시아 한자·유교 문화권 속에 살고 있다‘웃어른의 이름을 함부로 불러서는 안 된다’는 사회적 규범을 공유하고 있으므로 그들의 행동 동기를 짐작하기란 어렵지 않다.유교문화권에 깊숙이 뿌리박힌,이른바 기휘(忌諱)의 풍습이다.
이것은 동양만의 일이 아니다.정도의 차이가 있긴 하나,누군가의 이름을 직접 부르는 일을 피하는 행동 유형은 동양뿐 아니라 서양의 문화 속에서도 발견된다.그 상대가 공포의 대상일 때라면 더욱 그렇다‘해리 포터’시리즈의‘볼드모트’를 떠올려 보면 쉽게 이해된다.마법사들은 볼드모트를 감히 그 이름으로 부르지 못한다.굳이 지칭해야 할 때에는‘이름을 부를 수 없는 자’라는 길고 복잡한 표현을 써서 에둘러 간다.
볼드모트만이 아니다.신성한 존재,두려운 존재,다가설 수 없는 존재.그런 존재의 이름은 흔히 감춰지게 마련이다.히브리어 성경은 신의 이름을 YHWH라고 표기하지만 직접 발음하지 않는다.영어로도 그저 “Lord”라고 옮길 뿐이다.고대 그리스인들 또한 죽음의 신 하데스를 그 두려운 이름 대신 플루톤,아이도네우스,클리메노스 같은 별칭으로 불렀다.악마,늑대,초자연적인 힘을 지니는 정령들,나아가 죽음 그 자체에도 다양한 별칭이 붙는다.모두 이름을 직접 부르지 않기 위한 간접화법들이다.동아시아의 기휘는 이러한 고대적 풍습이 장기 지속하는 것이라 볼 수도 있다.
이름은 부르라고 있는 것이다.그런데 어떤 이름은 함부로 부르지 못한다.왜일까?질문의 방향을 바꿔보자.이름을 부르면 어떤 효과가 발생하는가?프랑스의 마르크스주의 철학자 루이 알튀세르가 개진한‘호명(呼名) 이론’을 살펴볼 때다.
누군가 길을 걷고 있다.경찰이 무슨 이유에서인지 그를 불러 세운다.“어이,거기 당신!” 그는 호명을 받았고,몸을 180도 돌려서 되돌아본다.그 순간 무슨 일이 일어났을까?그는 불러 세워졌다.자신이 호명되었다는 사실을 알았다.그 호명에 응함으로써,그‘개인’은‘주체’가 되었다.
이 예화가 담긴 논문의 제목은‘이데올로기와 이데올로기적 국가장치’다.경찰이라는‘국가장치’가 있고,슬롯 게임장그 국가장치는 어떤 이데올로기에 따라 움직인다.혹은 이데올로기를 구현하고 있다고 말해도 좋겠다.그러한 국가장치의 호명,이데올로기의 부름은,발걸음을 멈추고 돌아본 개인을 새롭게 규정한다.경찰의 호명을 통해 길을 걷던 개인은 모종의 사회적 관계의 그물망에 걸려들고‘주체’가 되는 것이다.
호명이 경찰에 의해서만 벌어지는 것은 아니다.우리는 태어나자마자 부모에게 이름을 받고,그 이름으로 친구를 사귀며,온라인 카지노 캐나다학교를 다니고,연애를 하고,결혼을 하고,아이를 낳아서 다시 이름을 붙이고 부른다.이데올로기적 장치인 국가 속에서 평범한 주체가 되는 것이다.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지만 마르크스주의 철학자 알튀세르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다.구조 속에서 호명된 개인이 주체로서 어떻게 자신이 속한 구조를 극복할 수 있을 것인지를 고민했다.
호명하는 자와 호명된 자의 관계는 동등하지 않다.적어도 첫 호명이 이루어진 상황만을 놓고 본다면 그렇다.호명되어 발길을 멈추고 돌아선 행인과 경찰의 관계가 동등할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다.이 불균형을 완화시키려면 행인 역시 경찰을 호명해야 한다.“무슨 일이시죠?관등성명을 알려주시죠.” 이 정당한 물음에 경찰이 응할 때 비로소 두 사람의 권력 관계는 균형을 되찾게 된다.
여기서 우리는‘호명의 정치철학’을 발견할 수 있다.권력자는 남을 호명하려 들지만 자신은 호명당하고 싶어 하지 않는다.호명당함으로써 자신의 실체가 드러나고,상대에게 지목되며,비판과 공격의 대상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본명을 드러내지 않은 채 남을 호명하며 자신의 권력을 휘두른다는 점에서‘해리 포터’의 볼드모트와‘1984’의 빅 브라더는 공통점을 지닌다.당신의 이름이 무엇이냐고 묻는 모세에게‘나는 나다’라고 답한 구약의 신 역시 마찬가지다.그들은 모두‘호명되지 않는 자’다.이데올로기 속의 주체가 아니라 이데올로기‘위’에 있는,아프리카 토토 디시초법적인 존재인 것이다.
시진핑은 중국의 국가 주석이다.중국인들이 그를‘호명해서는 안 되는 존재’로 여길 수는 있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그들끼리의 일이다.우리는 그들과 다른 이데올로기적 국가장치 속에 살고 있다.설령 대통령이라 할지라도 법의 호명을 피할 수 없는 나라가 대한민국이다.식당은 이름을 바꿀 수 있다.하지만 시진핑을‘호명할 수 없는 존재’로 두려워하고 그 이름을 감히 입에 올리지 말라는 요구에 대한민국이 굴할 수는 없다.중식당을 파손하고 도망간 용의자를 반드시 체포하여 우리의 법으로 처벌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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