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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로 만나는 인문학] 자살 ④ 절망의 탈출구

▲  빌헬름 코타르빈스키 <자살자의 무덤> 1900년 ⓒ 퍼블릭 도메인
폴란드 출신 화가 빌헬름 코타르빈스키(1848~1921)의 <자살자의 무덤>은 어떤 반응을 보여야 할지 난감한 그림이다.제목이 아니면 무덤과 상관없는 장면으로 다가온다.묘비명이 있는 비석도 아니어서 그저 산비탈 어딘가의 돌처럼 보이기에 십상이다.다만 자세히 보면 편편하게 다듬은 느낌을 주는 게 그나마 무덤의 분위기를 전한다.

죽음이 전적으로 절망이기만 할까?

자살자의 무덤임을 알고 봐도 난감하기는 마찬가지다.일단 현상적으로 느껴지는 분위기는 저주가 느껴질 만큼 어둡다.묘비는 중앙을 가로지르며 깊이 금기 가고,곳곳이 파손된 상태로 쓰러진 채 방치되어 있다.단단한 돌이 이 정도로 낡은 점으로 볼 때 가장 가까운 가족에게조차 아주 오랜 기간 잊힌 존재였음을 알 수 있다.

황량한 풍경도 그의 죽음에 사람들이 어떤 태도를 보였는지를 잘 보여준다.땅을 가득 덮고 있는 풀들은 짙은 갈색으로 변해 생명의 흔적이 사라지는 중이다.앞의 풀은 살짝 쥐기만 해도 바스락 소리를 내며 부서질 만큼 이미 바짝 말라 죽어 있다.짙은 밤하늘과 겹치면서 을씨년스러움을 넘어 음산하기까지 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여기까지는 자살을 죄악으로 규정한 중세 기독교의 관점이 떠오른다.기독교식 장례를 금지하고,교회 묘지에서 멀리 떨어진 거친 땅에 묻혔다.그림의 무덤도 외진 숲속이고 주변에 다른 비석도 없이 방치되어 있다.근대에 들어서도 화가가 태어나고 성장한 폴란드처럼 가톨릭 전통이 강한 나라에서는 여전히 이러한 사고방식이 맹위를 떨쳤다.

그림에서 언뜻 풍기는 암울과 절망의 분위기가 이를 반영한다.신이 주신 생명의 선물을 거부한 죄를 저지른 자가 사후에도 저주 속에서 방치되는 현실 말이다.그런데 조금 더 꼼꼼하게 들여다보면 의외로 다른 측면이 나타난다.화가의 문제의식이 단순히 중세적 사고방식을 반복하는 데에 있는 게 아니라는 점을 보여주는 이미지가 보인다.

쓰러진 묘비 위로 흰 꽃이 피어오른다.다른 풀들과 달리 줄기와 잎에 생기를 의미하는 녹색 기운이 섞여 있다.마치 생명의 흔적이 사라져 바닥에 쓰러져가는 주위의 풀들에 저항이라도 하듯 하늘을 향해 줄기를 곧게 뻗고 꽃을 피운다.흰 꽃잎에서 떨어진 피가 묘비를 적신다.붉은 피는 아픔과 고통을 상징하기도 하지만,다른 한편으로 생명의 상징이기도 하다.

빛의 흐름도 화가의 메시지가 어디로 향하는지를 보여준다.묘비에서 멀어질수록 어둠이 짙어져 형태를 분간하기 어려울 만큼 절망이 가득하다.반대로 칠흑같이 어두운 연극 무대에서 주인공을 비추는 조명처럼,묘비와 여기에서 피어난 꽃으로 한 줄기 빛이 향한다.하늘도 먹구름으로 가득하지만,오직 한 곳에서만 은은한 빛이 흘러나와 묘비를 비춘다.

코타르빈스키는 무덤 주인공이 희망의 가능성을 자기 생명을 끊는 행위에서 찾았음을 말하려는 게 아닐까?자살을 죄악으로 규정하는 사회의 도덕률과 세상 사람 다수의 시선에 도전하려는 시도로 보인다.그가 폴란드 상징주의 미술 운동의 일원이었다는 점을 고려할 때 더욱 그러하다.풀·꽃과 빛·어둠의 상징적 대비로 자살에 대한 새로운 시각을 보여주려는 듯하다.

절망의 탈출구로 선택한 죽음

프랑스 인상주의 화가 에두아르 마네(1832~1883)의 <자살>은 죄악으로서의 자살,영웅주의적 자살,낭만주의적 자살과 다른 의미에 주목하게 만든다.한 남자가 침대에 쓰러져 있다.손에 권총이 들려 있고 흰 셔츠에 핏자국이 선명하다.침대도 몸에서 흘러내린 피로 흥건하다.권총을 쥐고 있고 평소 복장이어서 한 방으로 절명에 이른 듯하다.

방안 어디에도 종교적인 의미나 사후 세계에서의 처벌을 암시하는 장치가 없다.또한 국가나 개인의 명예를 지키기 위한,혹은 후대에 역사적인 교훈을 전하기 위한 서사적인 이야기도 없어서 영웅주의와도 거리가 멀다.그렇다고 해서 침대나 바닥 어디에도 열렬한 사랑으로 연결할 여인의 편지나 손수건 한 장도 없으니 낭만주의와 연결고리도 없다.

▲  에두아르 마네 <자살> 1877년 ⓒ 퍼블릭 도메인
사연을 추측할 만한 어떠한 정보도 없이 그저 자살로 한 청년이 죽었다는 '사실'만을 보여준다.종교적·도덕적 교훈을 비롯해 이전 시대의 다양한 갈래의 가치 판단과 비극적 사랑에 빠져서 나타나는 과도한 감정 표현을 배제하고,자살을 자연인으로서의 한 개인이 특정한 상황에 닥쳤을 때 선택하는 행위 중의 하나로 다룬 느낌이다.

마네의 막연한 호기심은 아니다.이 그림을 제작하기 10년 전쯤 파리에서 발생한 프랑스 화가 줄 홀트차펠의 권총 자살 사건이 영향을 주었다고 알려져 있다.당시 화가들이 간절히 선망하던 파리 살롱전에 출품한 그림이 낙선한 직후의 일이다.화가로서 앞길이 보이지 않는 절망이 너무 깊어서 선택한 자살이었다.

살롱전 낙선이 무슨 큰 절망인가 싶을 수 있다.하지만 화가로 입문하고 이름을 알리는 거의 유일한 등용문이었다.화가 인생이 걸린 절박함을 충분히 짐작할 수 있다.십 년이 넘도록 출품했으나 번번이 고배를 마셨다.마지막 기대를 건 작품이 떨어졌으니 절망도 깊었으리라.그는 "내겐 재능이라곤 전혀 없으니 죽는 수밖에 없다"라는 유서를 남기고 자살했다고 한다.

당시 프랑스 자연주의 문학의 거장 에밀 졸라는 신문에 게재한 글을 통해 이를 대중적으로 알렸다.개인 비극을 넘어,예술가의 숨통을 조이는 낡고 권위적인 살롱 심사 제도의 문제로 고발했다.살롱전에 대한 비판 여론을 형성하는 계기가 됐다.살롱전과 자주 충돌한 마네로서는 깊은 관심을 가졌을 테고,나중에 회화로 담았던 듯하다.

그에게 자살은 절망에서 벗어나는 탈출구였다.에밀 졸라는 이 사건에서 영감을 받아 쓴 소설 <작품>에서 화가에게 닥친 절망을 더 깊게 다뤘다.친하게 교류하던 인상주의 화가 마네와 폴 세잔을 녹여낸 주인공 클로드는 살롱전에 거듭 낙선한다.마지막 기대를 걸고 작품을 구상하던 중,가난 속에서 병을 앓던 자기 아이가 죽는 일이 벌어진다.그는 눈물을 흘리면서도 살롱전 출품의 강박관념에 사로잡혀 죽은 아이의 그림을 그린다.

처절한 심정으로 완성한 그림 <죽은 아이>가 살롱전 심사를 통과하여 전시된다는 소식을 듣는다.오랫동안 비참한 생활을 견디며 성공만을 기다렸기에 "아!어쨌든 드디어 빛을 보았구나!"라며 들뜬 마음으로 개막을 기다린다.사람들이 모여 갈채를 보내는 환영까지 본다.

하지만 개막날 몇 번이나 샅샅이 뒤져도 자기 그림을 찾지 못한다.그러던 중 두 번이나 지나친 벽면에서,길이가 10m나 되는 거대한 다른 작품의 위쪽 구석에 처박혀 있음을 발견한다.너무 높이 걸려 있고,대작에 가려서 아무도 관심을 두지 않았다.작품이 너무도 멀리 떨어져 있어 그림 속 아이가 형체를 알 수 없는 고깃덩어리처럼 보일 정도였다.


아이를 잃은 슬픔에 눈물을 흘리면서도 떨리는 붓으로 그렸다.오랜 기간 낙선의 아픔을 겪으면서 버텨왔고,이번만큼은 사람들을 사로잡을 그림이 완성되었다고 확신했다.과거에는 그의 작품에 비웃음과 욕설로 반응했다.고통이긴 했어도 한편으로는 이를 악물고 스스로 다그치는 역할도 했다.하지만 이번에는 아무런 반응도 없고,아무것도 아니었다.

보통 사람들로서는 쉽게 이해가 갈 최악의 절망이 아닐 수 있다.하지만 예술혼을 생명으로 여기는 예술가에게는 세상에서 경험하는 가장 끔찍한 고통이다.적어도 예술적 성취에 생명을 걸었던 클로드에게는 그 절망의 끝에서 마지막으로 부여잡은 끈이 바로 자살이었다.

에밀 졸라는 세잔과 40년 지기 친구였고,여러 인상주의 화가와 친밀한 관계를 맺었다.누구보다도 청년 화가들의 꿈과 절망이 어디에서 오는지 잘 알고 있었다.비록 세잔이 이 소설을 읽고 자신을 무능한 화가로 묘사한 데 격분해 에밀 졸라에게 절교를 선언했지만 말이다.

"나는 죽을 권리를 소망한다"

자살은 또 다른 절망일 뿐,절망의 탈출구일 수 없다는 지적이 곧바로 나올 듯하다.보통은 절망이 깊을수록 어떡하든 스스로 희망의 단서를 마련해야 한다는 권고가 뒤따른다.영국 화가 에블린 드 모건(1850~1919)의 <절망의 감옥 속 희망>은 이러한 지적과 권고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작품이다.

▲  에블린 드 모건 <절망의 감옥 속 희망> 1887년 ⓒ 퍼블릭 도메인
절망의 감옥에서 몸부림치는 한 여인이 있다.현실의 감옥이라기보다는 마음속 감옥이리라.밖을 향한 문과 창은 철망으로 막혀있다.칙칙한 감옥처럼 검은 옷을 입고 자신을 격리한 상황이다.뒤로는 후광이 선명한 희망의 여신이 램프를 들고 그녀에게 다가선다.비록 작은 등불이지만 희망의 싹을 찾는 데서 절망의 감옥에서 벗어나는 문이 열린다는 점을 보여준다.하지만 그녀는 머리를 숙이고 자기 안의 절망에 잠긴다.

화가는 절망이 있는 곳에는 아무리 작아도 희망의 근거가 있기 마련임을 알려준다.문제는 절망에 빠진 사람이 스스로 만든 감옥 안에서 벗어나지 않는다는 점이다.절망의 원흉은 벗어날 길이 없어 보이는 견고한 감옥이 아니다.절망에 갇혀 살거나 참혹한 결말로 향하는 경향은 희망을 찾으려 하지 않는 데서 온다는 메시지를 전하려는 듯하다.

하지만 오랜 기간 절망에 고통을 받아본 사람들은 안다.때로는 희망이 더 큰 절망을 부른다는 점을 말이다.흔히 '희망 고문'이라고 한다.단지 은유나 수사적인 표현이 아니다.실제로 희망이 고통을 더 쥐어짜는 고문 역할을 해서 절망의 수렁을 더 깊게 만들기도 한다.

감당이 어려운 육체적·정신적 고통이 반복되는 사람들에게 스스로 목숨을 끊는 행위가 절망의 늪에서 벗어나는 탈출구가 되기도 한다.한국 작가 남유하의 기록 <오늘이 내일이면 좋겠다>에는 고통에서 벗어나는 행위 자체가 어떻게 희망의 근거일 수 있는지가 실려있다.

암 투병 중인 엄마가 온몸에 전이된 후 극심한 고통에 시달리다가,스위스 의료 기관의 도움으로 이른바 '존엄사'에 이르는 과정을 섬세하게 기록한 내용이다.안락사라고도 불리는데,정확히는 의료 기관을 도움을 받아 스스로 약물이나 주사를 사용한다는 점에서 '조력 자살'로 규정된다.스위스에서 죽음 처방을 받기 전날 엄마와 다음의 대화를 나눈다.


엄마에게 생명을 거두는 행위는 끝없는 고통에서 벗어나기 위한 간절한 소망이었다.기자가 엄마에게 '개똥밭에 굴러도 이승이 낫다'라는 속담을 거론하며 왜 죽음을 선택했는지를 물었다.이에 "매에는 장사가 없다는 속담도 있죠.누구도 죽고 싶은 사람은 없어요.다만 두드려 패는 듯한,온몸을 난도질하는 듯한 통증을 끝낼 방법이 죽음밖에 없으니까"라고 대답한다.

당사자에게는 온몸을 난도질하는 듯한 통증이란 게 과장이 아니다.육체적이든 정신적이든 출구가 없는 절망이 반복되는 사람이 겪는 고통은 자기 살이 찢겨나가는 듯한 수위에 이른다.얼마나 자기 죽음이 간절한 탈출구였으면 하루라도 더 당겼으면 하고,심지어 죽음을 기다리는 단 몇 분조차도 길게 느껴졌을까.

열아홉 살에 교통사고로 엄지손가락을 제외한 온몸이 마비되어 몇 년을 살아가던 프랑스 청년 뱅상 욍베르도 <나는 죽을 권리를 소망한다>에서 비슷한 경험을 전한다.고통스러운 나날을 보내다가 엄마에게 죽음은 추악한 게 아니고 자신에게는 문제의 해결이기에,"엄마가 제가 죽는 걸 도와주지 않는다면 저 혼자서라도 해야 해요"라며 설득한다.

담당 의사에게도 영원히 깨어나지 않도록 약을 처방해 달라고 부탁하지만,프랑스에서는 금지되어 있다며 거부한다.당시 프랑스 대통령 시라크에게 "또렷한 의식을 지닌 환자라면 누구나 자기 행동에 책임을 져야 하고 생존 또는 죽음을 선택할 수 있는 권리가 있다"라며 간절한 호소를 담은 편지를 보낸다.그러나 대통령에게 그러한 권한이 없다는 답을 듣는다.

조력 자살의 법적 허용이 국민적 쟁점이 됐고,한 가수는 <뱅상>이라는 제목으로,일본 마작패'법을 바꿔요.나와 내 모든 형제를 위해 법을 바꿔요'라는 가사가 담긴 노래를 지었다.뱅상은 삶은 아름답기에 지켜야 한다는 사람들을 향해 "내 죽음 역시 아름답지 않나요?"라고 부르짖는다.법적으로 허용되지 않자,어머니의 도움으로 링거에 다량의 신경안정제를 투입하여 죽음에 이르렀다.이로 인해 그녀는 오랜 기간 경찰의 조사를 받았다고 한다.

한국은 남유하의 엄마처럼,아픈 몸을 이끌고 스위스까지 가야만 조력 자살할 수 있는 법체계 아래 있다.스위스·네덜란드·벨기에·스위스·룩셈부르크·콜롬비아·캐나다 등의 나라와 미국의 몇몇 주에서 존엄사를 허용한다.어떤 사람들은 아무리 어둡고 고통스러운 절망의 감옥 속에서도 한 줄기 희망의 끈을 놓지 않는다.하지만 또 다른 사람들이 갖는,존엄하게 삶을 마무리하여 절망에서 벗어나려는,생명에 대한 자기 결정권도 존중할 필요가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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