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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인 100색] 폐섬유증 투병 후 폐 이식.다시 얻은 숨으로 무대에 돌아온 가수 유열【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  1986년,대학가요제 무대,대상 수상후 앵콜로 부르는 모습 ⓒ 유열 제공
아침에 눈을 뜨고 숨을 들이마시는 일,가족과 이야기를 나누고 길을 걷는 일,노래 한 소절을 부르는 일.우리는 그것을 살아 있는 동안 당연히 주어지는 일상이라고 생각한다.가수 유열도 그랬다.그러나 어느 날 그에게 그 당연했던 '숨'이 사라지기 시작했다.숨 한 번 제대로 쉬는 것이 힘들어졌고,말을 잇는 것조차 버거워졌다.평생 노래해온 가수에게 노래는 생각조차 할 수 없는 일이 됐다.

체중은 40㎏ 남짓까지 줄었다.연명치료 이야기가 나올 만큼 죽음 가까이 갔다.폐 이식은 두 차례나 무산됐다.그 긴 터널 끝에서 유열은 기적처럼 새로운 폐를 얻었다.그리고 다시 숨을 쉬었다.
그에게 그 첫 숨은 단순한 호흡이 아니었다.누군가가 자신의 생명을 나눠준 덕분에 얻은 '두 번째 삶'의 시작이었다.

죽음의 문턱에서 돌아온 가수 유열이 지나온 긴 어둠의 시간과 다시 찾아온 삶,그리고 두 번째 인생에서 부르고 싶은 노래는 무엇일까.다시 시작된 그의 인생 이야기를 들어본다.

1986년,대학 3학년이던 한 청년이 MBC 대학가요제 무대에 올랐다.


훤칠한 외모에 부드러운 목소리,서정적인 선율을 타고 흐르는 노랫말은 관객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다.그가 부른 노래는 <지금 그대로의 모습으로>.마침내 대상 수상자가 발표되는 순간,'유열'이라는 이름이 호명됐다.무대에 올랐던 풋풋한 대학생이 하루아침에 전국의 주목을 받는 가수로 탄생하는 순간이었다.그날은 40년 음악 인생의 출발점이 됐다.당시의 자신을 떠올려 달라는 질문에 유열은 잠시 미소를 지으며 짧게 답했다.

"풋풋했죠."

짧은 한 마디였지만 그 속에는 꿈을 안고 무대에 섰던 스물다섯 살 청춘의 시간이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대학가요제 이후 그의 음악 인생은 빠르게 펼쳐졌다.1집 <이별이래> <가을비>에 이어 2집 <화려한 날은 가고> <하늘을 닮은 그대에게>가 연이어 사랑받았다.이후에도 <에루화> <어느 날 문득> <사랑의 찬가> 등을 발표하며 유열만의 서정적인 음악세계를 만들어갔다.

돌이켜보면 그 시절은 노래 제목처럼 유열의 '화려한 날'이었다.그러나 그는 그때 알지 못했다.수십 년 뒤 자신이 노래했던 '화려한 날은 가고'라는 제목처럼 삶의 가장 깊은 어둠을 지나게 될 것이라는 사실을.그리고 그 어둠 끝에서 다시 한번 새로운 날을 맞게 될 것이라는 사실도.

▲  대학가요제 이후 <이별이래>,<가을비>,<화려한 날은 가고> 등이 잇따라 사랑받으며 가수 유열의 전성기가 시작됐다.ⓒ 유열 제공
"라디오는 청취자와의 데이트였습니다"

유열의 목소리가 머문 곳은 무대만이 아니었다.그는 오랫동안 라디오 DJ로 청취자들의 아침을 열었다.특히 <유열의 음악앨범>을 13년 동안 진행하며 수많은 사람의 사연을 듣고 음악을 통해 위로를 건넸다.그에게 무대와 라디오는 전혀 다른 공간이었다.그는 그 시간을 '데이트'라고 표현했다.

"라디오는 데이트 같았어요.13년 동안 아침마다 청취자들과 데이트를 한 거죠."

누군가는 출근길 자동차 안에서 그의 목소리를 들었고,누군가는 아이를 학교에 보내고 난 뒤 빈집에서 라디오를 켰다.시험을 준비하던 청춘도,사랑에 아파하던 사람도 그의 목소리와 음악을 들었다.그렇게 유열은 노래하는 가수를 넘어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는 사람이 됐다.

▲  13년간 <유열의 음악앨범>을 진행하며 청취자들의 아침을 따뜻한 음악과 이야기로 함께했다.ⓒ 유열 제공
평생 노래해온 사람에게 호흡은 생명이자 음악이었다.그런데 어느 날부터 그 당연했던 숨이 무너지기 시작했다.숨이 차 말을 잇기조차 힘들었고,노래는 더 이상 생각할 수 없었다.유열은 당시의 고통을 '공포'라고 표현했다.

"호흡이 안 된다는 것은 정말 공포예요.숨 쉬는 것도,말하는 것도 힘들었어요.노래는 더더욱 할 수 없었죠.나중에는 공황까지 찾아왔습니다."

병세가 깊어지면서 체중은 40㎏ 남짓으로 줄어드는 등 상황이 심각해졌다.하지만 육체적인 고통보다 더 견디기 힘든 것이 있었다.가족이었다.평생 노래를 불러온 가수였지만 그 순간만큼은 다시 무대에 설 수 있을지,노래를 부를 수 있을지는 중요하지 않았다.살아야 했다.사랑하는 가족 곁으로 돌아가야 했다.노래를 잃을지 모른다는 두려움보다 가족을 두고 떠날지 모른다는 안타까움이 더 컸다.

"제가 갑자기 떠나면남겨질 아내와 당시 초등학교 5학년 아들,그 생각을 하면 마음이 너무 아팠습니다."

▲  폐섬유증이 많이 진행된 2023년 가을 ⓒ 유열 제공
"죽음 앞에 서보니 비로소 삶이 보였습니다"

삶의 끝자락에 서자 지나온 시간이 전혀 다른 모습으로 다가왔다.유열이 그때 마주한 두 감정은 '부끄러움'과 '감사'였다.

그가 말하는 부끄러움은 지나온 삶을 부정하는 것이 아니었다.자신도 모르게 '나'를 앞세우며 살아왔던 순간과 관계들을 되돌아보게 됐다는 의미였다.내가 하고 싶은 것,내가 이루고 싶은 것,내가 중심이었던 일들과 관계들이 죽음 앞에서 큰 부끄러움으로 다가왔다.반대로 그동안 당연하게 여겼던 것들은 모두 감사의 이유가 됐다.가족과 좋은 사람들과의 인연,노래하고 방송할 수 있었던 기회,자연을 보고 느끼며 살아온 시간까지 어느 것 하나 당연한 것이 없었다.

"죽음 앞에 서보니 비로소 삶이 보였어요.돌아보니 제 안에 '나'가 참 많았더라고요.그것이 부끄러웠습니다.반면 가족과 좋은 사람들과의 인연,노래와 방송,자연까지 제게 주어진 모든 것이 신의 선물이었다는 것을 알게 됐어요."

▲  무대와 방송을 오가며 대중과 만나온 유열.어느새‘가수’라는 이름은 그의 삶을 상징하는 또 하나의 이름이 됐다.ⓒ 유열 제공
두 번 무산된 폐 이식,하루씩 버텼다

살고 싶다는 간절함만으로 새로운 폐를 얻을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기다리던 폐 이식의 기회가 찾아왔지만 두 차례나 무산됐다.희망을 품었다가 다시 기다림으로 돌아가야 하는 시간이 이어졌다.그 시간을 버티게 한 것은 '먼 훗날 반드시 좋아질 것'이라는 막연한 기대가 아니었다.그는 내일보다 '오늘 하루'를 바라봤다.

"제 힘으로 버틴 게 아니에요.하나님이 매일 손을 잡아주셨다고 생각합니다.아내와 아들,교회 성도들과 친구,지인들이 정말 많이 기도하고 응원해주셨어요.저도 매일 아침 눈을 뜨면 '오늘 하루를 이겨낼 힘을 주세요'라고 기도하며 하루를 시작했습니다."

내일을 장담할 수 없었기에 오늘 하루를 버텼고,다시 찾아온 하루를 또 견뎠다.두 번의 좌절에도 희망의 끈을 놓지 않았던 긴 기다림 끝에 마침내 새로운 폐를 만날 시간이 찾아왔다.죽음과 삶의 경계에서 버텨낸 하루들이 쌓여,유열에게 다시 숨 쉴 수 있는 두 번째 삶의 문이 열리고 있었다.

▲  버텨낸 하루 끝에 유열에게 두 번째 삶이 열렸다.ⓒ 유열 제공
아무 장치 없이 들이마신 첫 숨

2024년 7월말,마침내 폐 이식 수술이 이뤄졌다.성공이었다.수술을 마치고 열흘가량이 지나 두꺼운 호흡 보조장치를 뗐다.이후 가벼운 콧줄을 통해 소량의 산소를 공급받았다.그리고 다시 닷새가 지났다.마침내 산소 콧줄마저 떼었다.아무런 장치 없이 자신의 몸으로 숨을 쉬는 순간이 찾아왔다.들이마시고,내쉬었다.우리가 하루에도 수만 번 무심코 반복하는 그 호흡이었다.하지만 유열에게 그 한 번의 숨은 이전과 전혀 다른 것이었다.

"감개무량했어요.'참으로 감사합니다.어떻게 여기까지 온 것인가.' 그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짧은 순간 수많은 얼굴과 기억이 스쳐 지나갔다.하나님,이디야 룰렛자신을 위해 기도했던 사람들,곁을 지켜준 아내와 아들,참 의료진,그리고 무엇보다 자신의 몸 안에서 새로운 숨을 가능하게 해준 이름 모를 장기기증자.한 사람의 삶이 끝난 자리에서 또 한 사람의 삶이 이어지고 있었다.

"장기기증은 가장 고귀한 나눔입니다"

유열은 퇴원 후에 아내와 함께 장기기증을 약속했다.그리고 올해 3월부터 '생명나눔 홍보대사'로 활동하고 있다.자신이 장기기증을 통해 새로운 삶을 얻었기에 그 의미는 누구보다 절실하다.

"장기기증은 우리가 할 수 있는 가장 고귀한 나눔이라고 생각합니다."

한 사람의 장기기증으로 여러 사람의 생명을 살릴 수 있다.그러나 유열이 바라보는 장기기증의 의미는 단순한 숫자를 넘어선다.기증받은 사람은 새로운 삶을 얻는다.그리고 기증한 사람의 생명 또한 누군가의 몸과 삶 속에서 이어진다.그는 이를 '다시 사는 삶'이라고 표현했다.

▲  2026년 3월,생명나눔 홍보대사 위촉식 ⓒ 유열
다시 얻은 시간,세상과 만나는 두 번째 삶

새로운 숨을 얻은 뒤 유열의 삶은 달라졌다.이제는 바쁘게 앞만 보고 달리기보다 한 걸음,한 걸음 삶을 음미하며 걷고 싶다고 한다.그에게 다시 주어진 시간은 단순히 살아가는 날들의 연장이 아니다.하루하루를 소중하게 경험하고,사람들과 마음을 나누며 두 번째 삶을 의미 있게 채워가는 시간이다.그 변화는 방송 활동으로도 이어지고 있다.오랜 투병으로 대중의 곁을 떠나 있었던 그는 건강을 회복한 뒤 조금씩 사람들 앞에 다시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2026년 1월 KBS <불후의 명곡>을 통해 다시 노래하는 모습을 보여준 데 이어,5월에는 tvN <유 퀴즈 온 더 블럭>에 출연해 죽음의 문턱에서 겪었던 고통과 폐 이식으로 되찾은 삶의 이야기를 전했다.김주하가 진행하는 <데이앤나잇>에서는 가수로 살아온 세월과 인생의 전환점을 돌아봤고,<새롭게 하소서>에서는 힘겨운 투병을 견디게 했던 믿음과 감사의 마음을 나눴다.<다큐멘터리 3일>의 내레이션에도 참여하며 익숙한 목소리로 시청자들과 다시 만났다.

특히 그에게 <불후의 명곡>은 평생 잊지 못할 무대 중 하나가 됐다.한때 숨 한 번 쉬는 것조차 힘겨웠던 그가 다시 두 발로 무대에 섰다.노래는커녕 말 한마디 잇기도 버거웠던 사람이 자신의 목소리로 다시 노래를 부를 수 있었던 자리였기 때문이다.

제작진은 그의 복귀 무대를 위해 풍성한 오케스트라 반주를 제안했다.그러나 유열의 선택은 달랐다.화려한 편곡 대신 피아노 한 대를 택했다.오랜 세월 음악을 함께해 온 작곡가 친구,지성철의 반주에 맞춰 노래하고 싶었다.다시 노래할 수 있게 된 첫 무대인 만큼 가수가 되기 전 처음 노래를 시작했던 그 마음으로 돌아가고 싶었기 때문이다.무대에는 화려한 장치도 웅장한 오케스트라도 없었다.피아노 선율이 흐르고 그 위로 유열의 목소리가 조용히 울려 퍼졌다.40년 전 대학가요제 무대에 섰던 청년 유열과 죽음의 문턱을 넘어 다시 돌아온 유열이 한 무대에서 만나는 듯했다.

예전에는 노래를 얼마나 잘 부르느냐가 중요했다면,이제는 한 소절이라도 부를 수 있다는 사실 자체가 감사했다.숨을 들이마시고,목소리를 내고,그 목소리가 노래가 되어 사람들에게 전해지는 일.한때 너무나 당연했던 모든 순간이 이제는 기적이었다.

"다시 무대에 서서 노래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감사했습니다.예전처럼 잘 부르려는 마음보다 처음 노래를 시작했을 때의 마음으로 진솔하게 부르고 싶었어요."

한때는 숨을 쉬기 위해 사투를 벌였던 가수가 이제 그 숨으로 다시 노래하고 있었다.그곳에는 화려했던 시절의 유열이 아닌,삶의 가장 깊은 고통을 지나 다시 일어선 한 사람이 서 있었다.그날의 노래는 유열에게도,그를 지켜본 관객들에게도 오래도록 잊히지 않을 감동의 순간으로 남았다.

▲  2026년 1월,폐 이식 후 처음으로 <불후의 명곡> 무대에 섰다.ⓒ KBS
화려한 날은 가고,새날이 밝았다

젊은 날의 화려함은 언젠가 지나간다.박수도 멈추고 무대의 조명도 꺼진다.그러나 꽃이 진 자리에 열매와 씨앗이 맺히듯,인생은 화려함이 지나간 뒤에야 무엇이 진정 소중한지를 깨닫게 하는지도 모른다.유열에게 그것은 '평범한 하루'였다.

숨을 쉬고,밥을 먹고,에 콰토 리얼 카지노사랑하는 사람과 걷고,아들과 공을 차고,아침이면 다시 눈을 뜨는 일.죽음의 문턱까지 갔다 돌아온 뒤에야 그는 너무나 당연하게 여겼던 일상이 얼마나 큰 선물인지를 알게 됐다.

1986년,대학생 유열은 <지금 그대로의 모습으로>를 부르며 세상에 이름을 알렸다.이후 수많은 노래와 박수 속에서 흐른 뒤,그는 전혀 다른 의미의 무대 앞에 다시 섰다.누군가가 남겨준 생명으로 오늘을 살아가고 있기 때문이다.한 사람의 마지막 선택이 또 다른 사람의 삶을 이어주었고,유열에게 주어진 하루의 의미도 이전과는 달라졌다.이제 그에게 중요한 것은 얼마나 화려한 무대에 서느냐가 아니다.자신에게 주어진 시간을 어떻게 살아가고,받은 생명의 의미를 어떻게 세상과 나눌 것인가에 있다.

다시 얻은 숨으로 맞이한 새날.그는 이제 자신만을 위해서가 아니라,자신에게 생명을 건네준 누군가의 몫까지 품고 살아간다.그리고 그 두 번째 삶은 '나'를 넘어 '우리'를 향하고 있다.화려한 날은 갔지만,유열의 새날은 이제 다시 시작되었다.
▲  2018 동계올림픽 유치 기념 음악회에서 당시 강릉시장,필자와 함께한 가수 유열.ⓒ 진재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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