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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릉 따라 걷는 시간 ①] 축제에 밀려버린 문화유산의 가치… 숲길에서 마주한 역사와 손주의 절【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1926년 일제강점기 민족정신을 되살리고자 제정한 '가갸날'을 시초로,한글날이 올해로 100주년을 향해 나아가고 있다.훈민정음(訓民正音)을 창제하여 세상에 펴낸 세종대왕의 숭고한 뜻을 기리는 뜻깊은 국경일을 맞아,온 가족이 함께 경기도 여주에 위치한 세종대왕릉(영릉 英陵)과 효종대왕릉(영릉 寧陵)을 찾기로 했다.
3일간의 연휴라 오가는 길이 걱정되었지만,딸네 부부와 두 손자까지 삼대가 함께 떠나는 두 번째 조선 왕릉 탐방길이었기에 설레는 마음을 안고 길을 나섰다.가을 햇살은 사방을 따스하게 비추고 있었다.
먼 길 끝에 만난 뜻밖의 낙담… 한글날에 해설이 없다니
딸네 집에서 출발해 여주 영릉 입구에 도착하기까지 무려 4시간이 넘게 걸렸다.진입로는 수많은 차량으로 인산인해를 이루었고,주차할 곳이 없어 1km 전부터 내려 뛰다시피 걸어 올라갔다.
도착하자마자 오후 1시 해설을 듣기 위해 안내소로 달려갔으나,돌아온 답변은 절망적이었다.평소 사전 예약제로 운영되던 여주 영릉의 문화해설이,하필 한글날 당일에는 여주시 행사와 많은 인파를 이유로 전면 중단되었다는 것이다.사전 예약조차 받지 않았다는 사실에 아쉬움이 밀려왔다.
한글날이야말로 미래를 이끌어갈 어린아이들과 부모들이 세종대왕의 안식처를 찾아오는 자명한 날이다.이런 절호의 기회에 오히려 해설사를 늘려 왕릉과 세종대왕의 업적을 생생하게 전달했어야 마땅하지 않을까.
축제와 공연도 좋지만,역사적 공간이 지닌 본연의 가치를 전하지 못한 점은 참으로 안타까웠다.더욱이 출입문 안쪽에 공연장이 설치되다 보니 수많은 사람이 이곳을 성역(聖域)이 아닌 단순한 '피크닉 장소'로 오해하기 십상이었다.능역 안에서는 정숙함을 안내하는 문화재 보호와 계도 교육이 이루어져야 했다.잔디밭을 뛰어다니거나 "소풍 오기 딱 좋은 곳"이라고 가볍게 말하는 모습을 보며 문화유산 관리에 대한 세심한 고민이 시급함을 절감했다.
두 왕릉이 간직한 조선 왕실의 숨은 역사 이야기
해설을 들을 수 없어 아쉬웠지만,그간 여러 왕릉을 다닌 덕분에 남편과 함께 안내판을 살피며 세종대왕릉과 효종대왕릉이 가진 특이한 구조를 깊이 관찰할 수 있었다.
세종대왕과 소헌왕후가 모셔진 영릉(英陵)은 본래 1446년 소헌왕후가 세상을 떠나자 서울 헌릉 서쪽에 조성되었다가 1450년 세종대왕이 승하하며 조선 최초의 합장릉이 된 곳이다.이후 풍수지리상 이장이 논의되어 1469년 예종 대에 여주로 옮겨왔다.
특히 능 안에는 능 제사에 쓰일 곡식을 마련하던 약 1300㎡ 규모의 '위토답(位土沓,논)'이 복원되어 있었고,동서 물길이 만나는 어구(御溝) 합수 지점도 눈길을 끌었다.2018년 발굴 당시 이 어구 축조에 쓰인 석물 중 미완성 문석인과 비석 조각이 발견되어 왕릉 조성 과정을 증언해 준다.
또한 향로와 어로가 정자각과 일직선을 이루지 않고 15도 정도 살짝 꺾여 뻗어 있는 점,하나의 봉분 아래 두 분을 모셔 영혼이 거니는 돌인 혼유석(魂遊石)이 2좌 배치되어 있었다.
700m 떨어진 효종대왕과 인선왕후의 영릉(寧陵) 역시 왕과 왕비의 봉분이 위아래로 모셔진 동원상하릉(同原上下陵) 구조를 띠어 특별했다.무엇보다 조선 왕릉 중 유일하게 금천교(錦川橋)가 홍살문 안쪽에 설치되어 있다.북벌을 추진하고 대동법을 실시한 강직한 군주 효종은,썬더 밸리 카지노 무료 슬롯 플레이계모 장렬대비와 형 소현세자의 자녀들을 살뜰히 챙기고 딸들을 위해 삼국지연의를 번역해 줄 만큼 자애로운 가장이기도 했다.
두 왕릉 모두 능침 바로 옆까지 바짝 다가가 참배하는 '도래솔길'과 유모차,휠체어도 다닐 수 있는 무장애 데크길이 설치되어 따뜻한 배려가 느껴졌다.과거 숙종,영조,정조가 효종대왕릉을 먼저 참배한 뒤 세종대왕릉으로 향하는 호젓한 '왕의 숲길'을 걸으며 왕들의 발자취를 느껴보았다.
할머니의 작은 해설,그리고 손주의 고사리손 절
세종대왕릉 정자각에 올라섰을 때,한 어머니와 아들이 "설명해 주는 해설사가 없어 참 아쉽다"라며 속상해하는 소리가 들렸다.그 안타까움에 그동안 공부해 온 지식들을 나누어주었다.향로와 어로,영 블랙잭 원작정자각과 비각의 의미,능침의 특징과 왕릉에서의 예절을 듣던 어머니와 아이의 눈빛이 반짝였다.잠깐의 해설에도 깊이 감사하던 두 사람의 모습에서 작은 배움을 나눌 수 있어 가슴 한구석이 뿌듯했던 순간이었다.
무엇보다 이날의 가장 큰 감동은 손주 둥둥이의 모습이었다.효종대왕릉에서 왕이 절을 올리던 자리인 '배위(拜位)'를 설명해 주자,네 살 둥둥이는 스스로 신발을 벗고 올라서서 정성스럽게 네 번 절을 올렸다.
세종대왕릉으로 오는 숲길에서 표지판을 읽는 둥둥이에게 이야기를 건넸다.
"둥둥아,우리가 '뱀 조심' 표지판을 읽고 안전하게 걸을 수 있는 것도 모두 세종대왕님께서 한글을 만들어 주신 덕분이란다."
둥둥이는 눈을 반짝이며 "맞아!세종대왕님이 한글을 만들어 주셔서 내가 글자를 읽는 거지!" 하고 씩씩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이어 정자각에 도착해서는 무릎을 단정히 꿇고 앉아 "세종대왕님,멋진 한글을 만들어 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하고 진심 어린 인사를 올렸다.아침에 도서관에서 빌려온 <타요랑 세종대왕> 그림책을 읽고 온 덕분이기도 했다.
사계절 내내 역사의 숨결이 숨 쉬는 왕릉이 되길
여주 영릉에는 문화 행사에 활용되는 옛 재실과,웅장한 격식을 갖춘 신(新) 재실이 함께 자리해 깊이를 더해준다.
그러나 주말과 가을철에만 관람객이 몰리는 현실,그리고 한글날이라는 뜻깊은 대목에 왕릉 본연의 역사 해설과 시민 계도 교육이 부재했던 점은 함께 고민해 보아야 할 숙제다.
단순한 일회성 축제에 그치지 않고,아이들이 우리 문화유산의 소중함을 가슴 깊이 깨달을 수 있는 내실 있는 해설과 교육 프로그램이 일년 내내 운영되기를 기대해 본다.먼 길을 돌아오느라 몸은 고됐지만,한글의 고마움을 온몸으로 배우는 손주의 맑은 눈망울 속에서 우리 문화의 찬란한 미래를 보았던,가슴 뭉클한 가을날의 여정이었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기자의 브런치,온라인 바카라 영상 조작블로그에도 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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