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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인 100색] 50년의 풍자와 사람 이야기,유환석 화백을 만나다【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휴대전화 너머로 들려오는 목소리가 유난히 경쾌했다.처음 통화하는 사이인데도 어색함이 없었다.편안하게 웃으며 이야기를 이어가는 목소리에서 사람을 대하는 그의 태도가 느껴졌다.
"아,나는 너무 작은 사람입니다."
자신을 낮추는 말이었지만 목소리에는 묘한 힘이 있었다.정겨움 속에 세상을 오래 바라본 사람만의 여유와 재치도 묻어났다.한국시사만화가협회장을 지낸 유환석 화백.그는 강원일보와 스포츠조선에서 오랫동안 펜을 잡으며 시대의 풍경과 서민들의 삶을 시사만화에 담아왔다.
웃음을 건네면서도 그냥 지나칠 수 없는 세상의 모순을 짚어냈고,날카로운 풍자 속에서도 사람을 바라보는 시선만큼은 놓치지 않았다.스스로는 '작은 사람'이라고 말했지만,그의 이야기를 따라가다 보면 한 시대를 관통해온 시사만화가의 삶이 조금씩 모습을 드러낸다.그가 바라본 세상과 그 속에서 만난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빈 종이에서 시작된 한 사람의 인생
새벽이면 빈 종이 한 장이 책상에서 그를 기다린다.신문사에 있을 때도 그랬고,퇴직한 지금도 크게 다르지 않다.수십 년 동안 사람들의 웃음과 분노,욕망과 슬픔을 한 컷에 담아왔지만,매일 마주하는 종이는 언제나 처음처럼 하얗다.
"그림을 그리는 사람에게 빈 종이는 늘 부담스럽죠.그런데 또 그 빈 종이를 보면 그리고 싶은 마음이 생깁니다.오늘은 또 어떤 사람을 만나고 어떤 이야기를 그릴까 생각하게 됩니다."
유환석 화백에게 만화는 단순히 그림을 그리는 일이 아니었다.시대를 바라보는 창이었고,사람을 이해하는 방법이었으며 자신의 삶을 기록하는 일이었다.그가 그려온 수많은 얼굴에는 한국 사회의 희로애락이 담겨 있다.정치인의 얼굴부터 이름 없는 시민의 표정까지,한 컷의 그림 속에는 당대의 사회와 사람들의 삶이 고스란히 녹아 있었다.때로는 웃음을 주었고,때로는 우리가 외면했던 현실을 날카롭게 되돌아보게 했다.
"시사만화는 결국 사람을 그리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정치나 사건을 소재로 삼지만 그 안에는 반드시 사람이 있거든요.그래서 저는 그림을 그릴 때도 사람을 먼저 생각하려고 했습니다."
그는 한 컷을 그리기 위해 늘 세상을 살폈다.신문을 읽고 뉴스를 듣고,사람들의 표정과 사회의 변화를 눈여겨봤다.사건의 겉모습보다 그 안에 있는 사람의 마음을 들여다보려 했다.그래서 그의 그림에는 시대가 있고 사람이 있다.수많은 그림을 그려온 지금도 빈 종이는 여전히 시작이다.그는 다시 종이 앞에 앉아 사람을 바라보고,그들의 표정과 세상의 풍경 속에서 이야기를 찾는다.그리고 그 이야기는 다시 한 컷의 만화가 되어 세상에 나온다.
"언젠가는 만화도 예술이 될 거야"
그가 만화와 인연을 맺은 것은 중학교 시절이다.미술시간이면 공책 한쪽에 몰래 만화를 그리곤 했다.그러다 교사에게 들켰다.당시만 해도 만화는 예술이라기보다 아이들이나 보는 그림으로 여겨졌다.그때 누군가 그에게 말했다."언젠가는 만화도 예술로 인정받을 거야."
그 한마디는 어린 소년의 마음에 오래 남았다.
"그때는 그 말이 '네가 좋아하는 걸 계속해도 된다'는 뜻처럼 들렸어요.그래서 만화를 계속 그렸습니다."
중학교 3학년 때 그린 '선생님'이 신문에 실리면서 만화가의 꿈은 현실에 가까워졌다.이후 그는 그림만 잘 그리는 것보다 세상을 바라보는 눈이 중요하다고 생각했다.거리에서 만나는 사람들의 표정과 행동,신문에 실린 사건과 사회의 변화까지 모두 교재가 됐다.그가 평생 그려온 것은 단순한 그림이 아니었다.웃음 속에 시대의 모순을 담고,안전 슬롯 사이트 비 타임 사이트한 컷의 그림에 사람들의 삶을 기록했다.공책 한쪽에서 시작된 작은 그림은 훗날 수천 편의 시사만화로 이어졌다.
시대를 그린 한 컷,'헹가래'
신문사에 들어간 뒤 그의 만화는 본격적으로 시대와 만났다.대표작이 된 '헹가래'도 그 과정에서 탄생했다.처음에는 노태우 정부 시절의 이른바 '물통 사건'을 풍자한 '물펀치'가 후보에 올랐다.하지만 정권이나 특정 사건에 기대면 생명력이 짧을 수 있다는 판단에서 다른 이름을 찾았다.사람을 들어 올리는 행위인 '헹가래'에는 풍자뿐 아니라 사람을 바라보는 따뜻한 시선도 담을 수 있었다.
"'물펀치'도 재미있었지만 시사만화는 특정 정권이나 사건에만 머물러서는 오래가기 어렵다고 생각했어요.'헹가래'라는 이름에는 사회를 풍자하면서도 사람을 위로하고 함께 살아간다는 의미를 담고 싶었습니다."
이후 '헹가래'는 17년 동안 신문 지면에 5000여 회 등장했다.그는 매일 신문을 읽으며 소재를 찾고,그날의 사건과 사람들의 반응을 살폈다.떠오른 생각을 스케치하고 먹선을 넣어 한 컷을 완성하는 것이 하루의 일이었다.
"지금 돌아보면 '헹가래'가 저보다 더 많은 것을 기억하고 있는 것 같아요.그림을 보면 그때 무슨 일이 있었는지,누구를 만났는지,제가 어떤 생각을 했는지 다시 떠오릅니다."
광화문에서 만난 국민의 얼굴
2002년 월드컵은 그에게 특별한 기억으로 남아 있다.당시 그는 막대풍선 대신 스케치북을 들고 광화문 거리응원 현장을 찾았다.그는 경기보다 사람을 바라봤다.환호하는 표정,서로 부둥켜안는 사람들,믿기 어려운 결과에 놀라는 얼굴들.그는 사람들 사이를 돌아다니며 표정과 몸짓을 스케치했다.누군가는 태극기를 온몸에 두르고 있었고,누군가는 처음 만난 사람과 어깨를 걸었다.거리 곳곳에서 낯선 사람들이 서로를 격려하고 함께 웃었다.
그는 그 장면들을 놓치지 않았다.그리고 약 3주 동안 매일 '헹가래의 월드컵 엿보기'를 연재했다.
신문 지면에는 경기 결과만이 아니라 거리에서 만난 사람들의 표정과 행동이 담겼다.서로 모르는 사람들이 하나가 되고,함께 웃고 함께 환호하는,새로운 풍경이었다.훗날 돌이켜보니 그때 그가 그린 것은 월드컵의 기록이면서 동시에 한 시대를 살아간 사람들의 얼굴이었다.
자료를 잃어버려도 기억은 남았다
2000년 시드니올림픽 현장에 파견됐을 때의 일은 지금도 그에게 웃음 섞인 기억으로 남아 있다.
낮에는 경기장을 뛰어다니며 취재하고,밤에는 만평을 그려 서울로 송고했다.해외에서 열리는 올림픽 현장을 직접 취재한다는 설렘도 있었지만,매일 원고를 만들어야 한다는 부담도 컸다.
"낮에는 계속 돌아다니면서 취재하고,밤이 되면 또 그림을 그려야 했어요.올림픽이니까 볼거리는 많은데,와이즈 토토 앱저는 놀러 간 게 아니잖아요.어떻게든 그날의 이야기를 한 컷에 담아내야 했죠."
문제는 언어였다.어느 날 먹을거리를 사러 갔다가 말이 통하지 않았다.그는 종이에 소와 말린 고기를 그렸다.육포를 주문하려던 것이었다.그런데 돌아온 것은 뜻밖에도 개 간식이었다.
"영어가 안 되니까 소를 그리고,고기를 말린 것도 그렸어요.저는 당연히 육포인 줄 알았는데 나중에 보니까 개가 먹는 간식이더라고요.지금 생각하면 웃기는 일이죠."
해외 현장에서 벌어진 작은 실수였지만,그에게는 또 하나의 취재 경험이 됐다.그러나 웃고 넘길 수만은 없는 일도 있었다.현장에서 취재 자료를 잃어버린 것이다.그는 "순간적으로 막막했다"면서도 그래도 다시 펜을 들었다고 했다.현장에서 보고 느낀 것을 기억해내고,남아 있는 자료를 바탕으로 그림을 그렸다.자료가 사라졌다고 현장의 기록까지 포기할 수는 없었다.
그렇게 완성한 원고는 다시 서울로 보내졌다.시드니에서 육포 대신 개 간식을 사던 만화가.그는 그때도 웃음을 잃지 않았고,자료를 잃어버린 순간에도 다시 펜을 들었다.그리고 마감시간을 향해 또 한 컷을 완성했다.
휴가지도 작업실,마감은 기다려주지 않았다
그에게 휴가는 온전히 쉬는 시간이 아니었다.며칠치 만화를 미리 그려 놓고 떠나도 뉴스에서 귀를 뗄 수 없었다.큰 사건이 터지면 휴가지가 곧바로 작업실로 변했다.당시 신문 초판 마감은 오전 11시였다.춘천에 있을 때는 원고를 버스에 맡겼다.원고를 실은 버스가 서울로 향하면 아르바이트생이 상봉터미널에서 기다렸다가 원고를 받아 신문사로 전달했다.한 컷의 만화가 신문에 실리기까지 사람과 사람 사이를 원고가 이동한 것이다.유환석 화백은 그 시절을 떠올리며 웃었다.
"요즘 같으면 컴퓨터로 바로 보내면 되지만 그때는 원고를 직접 보내야 했어요.마감시간은 정해져 있으니까 어떻게든 시간 안에 서울로 보내야 했죠."
그렇게 그는 수십 년 동안 하루 한 컷을 이어갔다.퇴직하면 조금은 편해질 것 같았다.그러나 붓을 내려놓는 일은 없었다.오히려 신문사의 마감에서 벗어나면서 더 자유롭게 그리고 싶은 것들을 그릴 수 있게 됐다.
그러나 그의 만화 인생에 늘 웃음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신문 보도를 믿고 유명 연예인의 비리 의혹을 소재로 만화를 그린 일이 있었다.당시에는 보도된 내용이 사실이라고 믿었다.하지만 몇 년 뒤 그 보도가 허위였다는 사실이 밝혀졌다.그는 그 일을 오랫동안 마음에 담아두었다.
"그때는 신문에 그렇게 보도가 됐으니까 사실이라고 생각했죠.만화가는 보도를 바탕으로 그릴 수밖에 없었고요.그런데 나중에 그게 사실이 아니었다는 걸 알게 되니까 마음이 무거웠습니다."
그는 특히 명예가 훼손된 당사자를 위해 자신이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는 점을 마음에 두고 있었다.그 경험은 만화가의 책임을 다시 생각하게 한 계기가 됐다.시사만화는 뉴스를 소재로 하지만,뉴스가 언제나 진실인 것은 아니다.한 줄의 기사와 한 컷의 그림이 한 사람의 삶에 어떤 영향을 미칠 수 있는지도 생각하게 됐다.그때부터 그는 그림을 그릴 때 한 번 더 생각하게 됐다.
"이게 사실인가,누군가에게 어떤 상처가 될 수 있는가를 생각하게 됐어요.웃기게 그리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 그림을 보는 사람이 어떻게 받아들일지도 생각해야죠."
그렇다고 풍자를 멈춘 것은 아니다.오히려 사람을 바라보는 시선이 달라졌다.한 번의 그림이 남긴 마음의 빚은 그렇게 그의 풍자를 조금씩 바꿔놓았다.웃음 뒤에 사람이 보였고,비판 뒤에 삶이 보이기 시작했다.수천 편의 시사만화를 그린 그에게 가장 오래 남은 교훈도 어쩌면 여기에 있다.
수많은 얼굴로 쓴 자서전
그의 작업실에는 수많은 얼굴이 있다.어린 시절 가족의 얼굴부터 신문사에서 만난 사람들,만화계 동료들,정치인과 연예인,그리고 이름 없는 시민들까지.그가 그린 얼굴 하나하나가 결국 그의 삶과 연결돼 있다.
"그림을 그리면서 참 많은 사람을 만났어요.어떤 사람은 한 번 만나고 지나갔고,어떤 사람은 오랫동안 인연을 이어갔죠.그런데 지나고 보니 그 사람들이 모두 제 그림 속에 남아 있더라고요."
그래서 그의 작품을 따라가다 보면 한 사람의 자서전을 보는 듯하다.글로 쓴 자서전이 아니다.사람의 얼굴로 쓴 자서전이다.그는 자신이 그린 수많은 얼굴을 떠올리며 지난 시간을 돌아봤다.
"젊었을 때는 내가 그림을 잘 그려서 여기까지 온 줄 알았어요.그런데 지금 생각해보면 주변에 좋은 사람들이 정말 많았어요.기회를 준 사람도 있었고,격려해준 사람도 있었고,힘들 때 도와준 사람도 있었죠."
그의 작업실에 놓인 수많은 얼굴은 하나의 이야기로 이어진다.가족에서 시작해 동료와 친구,신문사 사람들,독자와 시민들까지.그 얼굴들이 모여 유환석이라는 한 사람의 삶을 만들었다.그가 그린 수천 장의 만화 안에는 수천 명의 사람이 있었다.그래서 그의 그림은 한 시대의 기록이자 동시에 한 사람의 인생 기록이다.
5000여 회의 '헹가래'와 2000여 회의 '공수래'.유 화백은 수천 개의 한 컷으로 한국 사회의 시간을 기록했다.그러나 그의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작품은 아직 완성되지 않았는지도 모른다.신문사를 떠난 뒤에도 그는 여전히 붓을 든다.그리고 다시 빈 종이를 마주한다.
"오늘 잘 그려도 내일은 다시 빈 종이와 마주해야 합니다."
어쩌면 이것이 만화가 유환석의 삶을 가장 잘 보여주는 말인지 모른다.한 시대를 그린 사람도 매일 다시 처음으로 돌아간다.그리고 다시 사람을 바라본다.한 사람의 얼굴에서 시대를 읽고,평범한 풍경에서 새로운 의미를 찾아낸다.그가 평생 그려온 것은 결국 만화가 아니라 사람이었는지도 모른다.
수많은 사람을 만나고,수많은 얼굴을 그리고,수많은 시대를 지나온 사람.그의 그림 속에는 그가 만난 사람들이 있고,그 사람들 사이에 유환석이라는 한 사람이 있다.오늘도 그는 그 사람들을 다시 그린다.그리고 빈 종이 위에 또 하나의 삶을 기록한다.